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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협기자단

[Review] 2019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 2019-03-24 766

[Review] 2019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 했다. 우리 클래식 작곡계의 현황이 하나의 연주회 안에서도 충분히 조망될 수 있다면 그것은 클래식 음악을 보족하는 실체적 토대가 이와 같은 연주회이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 작곡가협회의 2019년 첫 번째 대실작인 3월 13일의 공연은 우리 클래식 작곡계가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또렷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하나의 반사판과 같았다. 물론 어떤 거시적 흐름, 즉 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보단 차라리 작곡가들이 자신의 현실적 문제를 대처하는 개별적 전략을 만들어가고 있고 그것이 점차 계열화되고 있다 말하는 편이 옳다. 본 기사에서도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작곡가들을 연주 순서가 아니라 그와 같은 계열상의 분류에 따라 소개해 볼 것이다.


 서양음악에서 동양적 철학을 구현하려는 시도는 예전부터 있어왔다. 그와 같은 움직임이 최근 우리나라에선 두 가지의 서로 다른 방향으로 분화된 듯하다. 하나는 20세기 초의 한국 음악이나 예술에 대한 재발굴이고, 다른 하나는 뮤지컬이나 오페라 등 극양식의 음악적 차용 혹은 극양식의 작곡이다. 전자가 약간은 학술적이고 전문적인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이라면 후자는 상당히 대중적 접근성을 염두에 두며 진행되고 있는 작업인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순서로 연주된 최현석 작곡가의 작품은 가곡, 오페라, 뮤지컬 분야에서 주로 활동해온 작곡가의 이력을 반영하듯 가야금으로 연주하는 팝페라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작곡가 자신이 대중적 장르의 문법에 익숙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의도적으로 그런 문법을 차용하고자 한 것일까, 음소재 측면에서 간혹 탈조성적이라 할 수 있는 부분도 간혹 나타났으나 전반적으로는 쉬운 선율, 쉬운 화성, 쉬운 정서가 일관되게 나타났다. 


 반면 다섯 번째로 연주된 채경화 작곡가의 나의 노래는 한층 더 학구적인 차원의 작업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1930년대의 시인 오장환의 시에 음악을 붙인 이 가곡은 일제시대 문학 특유의 어둠과 그 속에서 희미하게 피어오르는 희망을 포착해내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다 보니 음악 자체도 마치 김순남의 가곡처럼 약간 예스러운 느낌을 주었는데 외려 그런 점이 이 곡에 대한 미학적 몰입도를 높였다. 

정영빈 작곡가와 김신 작곡가의 작품은 이 같은 흐름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전통적 현대음악의 분위기를 강하게 풍기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두 작곡가의 음악은 그 음향적 분위기가 다소 비슷하게 들렸을지언정 음악을 구성하는 방법 면에서는 완전히 다른 양상과 철학을 보였다.


 우선 첫 순서로 연주된 김신 작곡가의 작품 첼로를 위한 Selbstgesprache 1(혼잣말 1)은 다소 낭만주의적 미학이라 할 수 있는 `감정의 표현`이란 컨셉을 바탕으로 첼로의 다양한 주법을 응용해본 작품이다. 작곡가가 선율악기로서 가장 풍부한 표현적 가능성을 가진 악기 중에서도 음역이 가장 넓은 첼로를 선택한 것은 이 같은 표현의도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작곡가가 의도하는 바는 그 음악 감상의 결과로 청자들에게 `감정적 울림`이 남는 것. 때문에 이 곡은 기법적으로는 한 대의 첼로를 위한 연구작품, 미학적으로는 일종의 신낭만주의적 음악이라고 할 수 있었다.


 반면 마지막에 연주된 정영빈 작곡가의 Gestaltspiel은 음을 선택하고 그것을 배치하는 방식의 경제성과 논리성에 초점이 맞춰져있는 작품이었다. 김신 작곡가의 작품에서 사용된 제스쳐들이 감정의 표현이라는 정서적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면 정영빈 작곡가의 작품에서 사용된 제스쳐들은 매개변수의 통제와 변형을 통한 의도의 관철이라는 논리적 의도를 위해 사용된 것이다. 때문에 그의 작품 내에 다양한 색채의 화성과 선율이 등장했으나 그것이 전체적으로 볼 때는 거대한 하나의 전개적 흐름에 보족물로서 들어가있는것으로 여겨질 뿐 순간순간의 이미지에 집중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었다. 때문에 그의 음악은 전체를 통괄하는 긴장감의 생성과 이완에 집중하며 들을 때 가장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연주된 김애리 작곡가의 작품과 네 번째로 연주된 서유라 작곡가의 작품은 이와 같은 경향들로부터는 다소 거리가 있는 개인적이고 묘사적인 작업으로 보였다. 우선 김애리 작곡가의 작품 현악3중주를 위한 신지인은 그 제목에서 바로 나타나듯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각기 신 인간 땅으로 상징화하여 음악을 전개했다. 그와 같은 묘사적 의도를 잘 보여주듯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첼로의 오스티나토 베이스는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나타나기 위한 어떤 토대처럼 작용했다. 그 위에 얹혀진 바이올린과 비올라는 때에 따라 솔로로 연주하기도 하고 어떨 때는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마치 신과 인간의 조화를 형상화한 것처럼 보였다.


 네 번째로 연주된 서유라 작곡가의 작품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감각의 여행은 작곡가 개인이 작품을 창작한 과정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었다. 작품의 제목인 감각의 여행은 시로부터 음소들을 얻어내 그것을 음악화해간 작곡가의 내면적 절차들을 상징하며 그와 같은 상징물들은 인지의 저편에서 다만 그 존재를 짐작할수만 있을 뿐이었다. 곡 전체적으로는 다양한 제스쳐와 무조적 불협화음이 혼합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번 연주에서 드러난 경향을 크게 압축해보면 전통적 현대음악 어법의 계승, 텍스트와 음악을 결합하려는 시도, 작곡가 개인적 세계의 표현으로 요약될 수 있다. 서두에서 밝혔듯 이는 한국에서 살아가는 현대음악가로서 각 작곡가가 찾아낸 나름의 의미이고 그것이 모여 만들어진 소위 흐름이요 사조일 것이다. 그것들이 연원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미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그런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었는지는 추후 추가적인 연구와 조사가 필요하리라 본다. 이 기사에서는 다만 2019년 첫 번째 실내악 작곡제전이라는 공연에 투사되어 나타난 한국 작곡계의 흐름을 제시하고 짚어보는 것을 소정의 목표로 삼아볼 따름이다.


7기 작협 기자단  - 노승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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