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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협기자단

[리뷰]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 - 김이현 기자 2023-04-07 145

<2023 KCOA Music Festival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Ⅰ>

김이현 기자 


지난 2023년 3월 22일 오후 6시에 시작한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세미나 Ⅰ ‘음악, 재현의 문제’’에는 음악학자 박수인, 작곡가 남정훈 연사가 함께했다.

세미나장에는 한국작곡가협회의 올해 첫 세미나인만큼 많은 사람이 자리했다. 박수인 연사는 이날 오후 7시 30분 예술의 전당에서 개최되는 2023 KCOA Music Festival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Ⅰ 프로그램 6곡 중 3곡을 꼽아 세미나를 진행하였다.

박수인 연사가 제시한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세미나 Ⅰ의 제목은 ‘음악, 재현의 문제’였다.

비발디의 사계를 예로 하여 음악적 재현의 중요성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마친 뒤, 이날 연주하는 작품의 의미를 ‘대상을 단순히 묘사, 표현하는 범주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언어를 음악으로 명시하는 것 이상의 가치와 형태를 담은 이날의 작품들은 그렇게 관객에게 감각적인 체험을 가능케 하였다.

 

한대섭 (대전현대음악협회) | 바이올린 독주 Wind Waves (Vn. 문지원)

작품 설명: 우리말에는 ‘바람’을 표현하는 재미있는 이름들이 많다. 샛바람 높새바람 하늬바람, 마파람 등 여러 이름으로 바람을 불러왔다. 이 곡은 먼 곳으로부터 불어와 손끝을 스치는 바람의 모양과 질감을 표현한 곡이다. 가만히 주위에 머물다가도, 스치듯이 때로는 할퀴듯이 지나가는 바람은 어떤 모양일까, 어떤 빛깔, 어떤 소리일지 상상하며 다양한 바람의 모양과 음색, 바람의 질감을 오선지에 점을 찍고 선을 그리듯이 표현하였다. 바람의 선은 하나의 음형이 되 손끝을 타고 흐르는 듯 유연하게 움직이다가도, 날카로운 돌풍이 되어 대기 중에 흩어지듯이 분산되어 사라진다.

연주시간: 약 7분 50초

 

다양한 A음을 중심으로 시작하는 Wind Waves의 Intro는 연주 전 실시된 세미나에서의 박수인 연사의 말과 같이 ‘청중의 감각을 이동시키는 기재’가 되었다. 활을 굴리며 바람소리처럼 시작하는 작품은 순식간에 연주회장을 마치 바람이 스치는 대나무숲으로 이동시켰다. 공감각적 경험을 가능케한 Intro는 금세 작품에 상당한 몰입도를 불러일으켰다.

개방현(A•E•C•D음)을 중심으로 구성한 작품은 B파트에 들어 E음을 강조하며 하모닉스 장식음을 흩뿌린다. 하모닉스 아르페지오가 교대로 등장하는 C파트에서는 하모닉스 글리산도가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 듣는 이로 하여금 청각적 집중도와 그에 어울리는 각자만의 상상이 가능하게 했다. D 파트에서는 G현에서 D음을 중음으로 연주하며 더욱이 개방현을 강조한다. 이 때 관객은 보다 극적으로 치닫는 작품의 클라이막스를 경험할 수 있다. 음향적인 하모닉스의 재등장으로 마무리되는 작품은 ‘더 이상 명시와 재현이 중요한 것이 아니(연사: 박수인)’라는 세미나의 주제와도 이어졌다. 한대섭 작곡가의 Wind Waves는 이처럼 숲에 부는 바람처럼 감각적으로 관객에게 다가왔다.

 

 

박현숙 (젊은음악인의모임) | 해금, 가야금, 타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시간의 기억-놀이1’ (해금 이아름 / 가야금 / 엄윤숙 / Perc. 박효신 / Pf. 최영필)

작품 설명: 이 곡은 2022년 대구국제현대음악제에서 위촉한 작품으로 어린시절 놀았던 기억을 모티브로 한 ‘놀이’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다. 우리는 살면서 가끔은 기분 좋은 상상을 하거나 추억을 떠올리며 답답한 마음을 푼다. 어릴 때는 친구들과 놀았고, 커서는 동생들과, 지금은 조카들과 함께하는 이 놀이는 아직도 인기가 있다. 이 곡의 시작은 가장 친숙하고 원초적으로 접근하는데, 음악적으로 단 세 개의 움에 기초한다. 세 개의 음은 음색이 다른 악기들의 결합을 통해 다양하게 펼쳐진다. 주요음, 주요 음정, 주요 음형들은 빠르기, 음색, 악기간의 움직임 등의 변화로 부분적으로 서로 얽히거나 단절되기도 한다.

 곡은 다분히 직관적이고 감각적으로 작곡되었다.

연주시간: 약 9분

 

‘시간의 기억-놀이1’은 한국인에게 가장 친숙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의 모티브 음인 A, D, C음을 중심으로 타악기의 재미있는 사운드와 함께 어우러진다.

가장 먼저 등장한 피아노 연주자의 피아노 선율에 맞춰 연주자들이 장난스럽고 익살스럽게 등장하는 Intro는 연주회장에서 펼쳐진 신선한 경험으로 하여금 금세 관객이 자리한 공간이 운동장처럼 느끼게 하였다. 흥겹게 펼쳐지는 모티브의 변주는 이내 가야금 속주로 이어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하강하는 변주는 극적인 효과를 느끼게 하였으며, 흥겹게 즐기던 작품은 피아노 인사이드와 타악기만 등장하는 파트에서 순식간에 잔잔하고도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가야금의 타악기화가 주로 나타난 클라이막스는 누구든지 작품에 푹 빠질 수밖에 없는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기세로 다가온다. 모든 연주자들의 우렁찬 마무리는 관객에게 활기를 선사하며 여운으로 자리한다.

 

 

진희연 (신음악회) | 첼로 독주 위로 (Vc. 황지연)

작품 설명: “힘든 일보다 더 힘든 건 혼자 있다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나를 바라봐 주기만 해도 슬며시 기댈 어깨를 빌려주기만 해도 안심이 되는 그런 사람이 우리에겐 필요하다."

전이수의 작품 (위로3>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하였다. 첼로라는 독주악기지만 4개의 현이 서로 위로하고 지지하듯 어우러져 소리를 같이하며 음악을 구성해 나간다. 힘든 이들에게 어깨를 빌려주듯 나의 음악도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되길...

연주시간: 8분

 

첼로의 고음역에서 시작하는 작품은 초반부터 glissando, double stop, 모호한 pitch를 통한 먹먹한 위로를 전달한다. 작품 중반의 sustain과 저음역의 두터운 glissando는 어쩌면 위로 받고자 하는 절규로 들리기도 한다. 내면을 꿰뚫고 마음 속 깊은 곳을 만지는 듯한 위로는 다듬어지지 않은 첼로 음색의 공명과 울림으로 어느샌가 관객의 옆에 다가와 느린 템포처럼 무겁고 따뜻하며, 본질적인 위로가 되어준다. 언젠가 또 한 번 진희연 작곡가의 위로를 연주회장에서 직접 만나 슬며시 어깨를 기대보기를 소망한다.

 

 

김지현 (ISCM-Korea) | 판소리와 6중주를 위한 춘향의 말 

1.           다시 밝은 날에

2.           춘향유문

3.           추천사

(판소리 이혜진 / Fl. 이지운 / Cl. 이성호 / Vn. 김지민 / Vc. 이태인 / Perc. 김인수 / Pf. 정다현 / Cond. 박혜산

작품 설명: <춘향의 말>은 '춘향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한 서정주(1915-2000)의 연작시이다. <춘향의말1: 추천사>, <춘향의 말2: 다 시 밝은 날에>, <춘향의말3: 춘향유문>까지 총 3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 편의 시를 기반으로 텍스트를 구성하여, 시의 내용을 음악적으로, 또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음악극 <춘향의 말>을 작곡하였다. 서정주의 시에서는 춘향의 말1 - 춘향의 말2 - 춘향의 말3의 순서로 나열되어, 현실 세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춘향이의 열망을 먼저 보여준 후, 도련님의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마지막으로는 도련님을 떠나지만 다시 태어나서도 도련님 옆에 있겠다는 유서형식으로 불교의 윤회사상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음악극에서는 시의 순서를 바꾸어 진취적인 여성상으로서의 춘향이의 마음을 좀 더 강조하고자 한다. 따라서 춘향의 말2 - 춘향의 말3 - 춘향의 말1의 순서로 하여, 도련님에 대한 사랑과 이별로 인한 아픔을 먼저 노래한 후.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마지막으로는 현실의 한계를 뛰어 넘으려는 춘향이의 의지를 표현하였다. 음악극에서는 무용을 포함함으로써, 시에서 드러나는 춘향이의 감정 변화 및 의지 등을 시각화하여 표현하였지만, 오늘 공연에서는 무용 없이 음악으로만 연주된다

연주시간: 18분

 

원본과는 사뭇 다른 형식의 춘향의 말은 4번의 ‘신령님’으로 구분된 1. 다시 밝은 날에로 작품의 문을 연다. 시를 적극적으로 재구성하여 의미의 강조를 드러내는 작품은 연주자들의 종치기, 코러스 등의 재밌는 요소를 마음껏 드러낸다. 리드미컬한 장단과 함께 진행되는 작품은 특히 중반부에 등장하는 Vn.과 Vc.의 스트링 유니즌과 목관 유니즌의 교차 진행으로 흥미진진한 흐름을 보여주며 극음악의 현장감을 몸으로 느끼게 한다. 춘향의 말은 긴 곡임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들의 집중도와 몰입도가 인상적일 정도로 몰아치는 부분의 연주합은 이내 관객을 압도한다. 불협화음과 협화음의 동시 등장, Pf.의 톤클러스터와 극적인 악상, 타악기가 인상적인 1. 다시 밝은 날에에 이어 격정적인 Pf와 Vc.의 Eb 지속음이 주 모티브인 2. 춘향유문은 Db 음으로 지속음이 교체되며 춘향의 공간으로 공간이 전환되는 효과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언어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시의 정서적 분위기를 표현하며 청중의 음악으로의 진입을 효과적으로 확대한다. 무엇보다 국악기와 서양악기가 적절하게 어우러진 춘향의 말은 국악과 서양음악이 잘 조화된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반짝인다.

 

 

이재구 (작곡가일번지) | 비올라 독주 놀이(의 이유) 

                       Ⅰ. 놀이의 규칙 [attacca]

                       Ⅱ. 회상(1) – 느린 발라드, 혹은 그을린 그리움 [attacca]

                       Ⅲ. 회상(2) – 급박한 로큰롤, 혹은 엉켜버린 후회들 [attacca]

                       Ⅳ. 놀이의 시작, 그리고 놀이 너머에는

(Va. 변정인)

승자와 패자가 없는 놀이는 가능할까? 아마도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결과가 승리와 패배로 이어질지라도, 그 둘 사이에 우열이 없고, 승리한 이와 패배한 이가 함께 행복해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환희와 희열을 나눌 수 있는 놀이가 가능하다면, 우리 속의 승자와 패자의 이분법은 이내 무력해질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놀이를 꿈꿔 본다.

연주시간: 약 7분

 

하모닉스와 pizz.가 강렬한 이재구 작곡가의 놀이(의 이유)는 gliss와 jete. 그리고 빠른 tremolo 등의 비올라 테크닉을 아낌없이 드러낸다. 파편(simple idea)이 발전되는 과정에서 double stop gliss. 와 부드러운 음색은 대조되어 나타나는데, 이 부분에서 청자는 어느새 연주에 몰입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attacca 형식으로 이루어진 작품은 마치 한 곡처럼 들리기도 하며 이러한 흐름을 Va. 연주를 맡은 변정인 비올리스트가 작품에 몰입한 완벽한 연주를 통해 보다 극적인 경험을 선사한다. 

 

 

남정훈 (2023 파안생명나무작곡가) | 플루트, 클라리넷,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Melos (세계초연) (Ensemble Eins: Fl. 손소이 / Cl. 김민욱 / Vn. 강민정 / Vc. 주윤아 / Pf. 윤혜성 / Cond. 이상민).

멜로스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노래 그리고 모든 예술을 통칭하는 단어이며 현재 선율을 지칭하는 단어인 멜로디의 전신이다. 고대 그리스 시의 운율과 음고가 더해져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시의 자연스러운 호흡이 아닌 작곡가가 인위적으로 정한 불규칙한 호흡을 대입하여 작품의 전반적인 형식을 만들었다. 이후 선을 미시적으로 보았을 때 하나의 선이 아닌 작고 다양한 점과 선으로 이루어진 것과 압력에 따라 선의 명함이 달라지고 형태가 달라지는 점을 착안하여 작품의 전반적인 색채와 방향성을 정하였고 이를 하나의 선율로 보고 5개의 악기들이 그 선율을 구성하는 점 또는 점선으로 역할을 하게 하였다.

연주시간: 약 12분

 

2023 파안생명나무작곡가로 선정된 남정훈 작곡가는 이날 개최된 세미나에 참석해 수적 논리성과 시스템, 소리 소재의 묘사 및 악기간 소리 모방 등을 작품에 이용한다고 소개하였다. 2023 KCOA Music Festival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Ⅰ에서는 플루트, 클라리넷,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Melos가 세계초연 되었으며, 작품은 피아노의 흥미로운 주법과 악상 유니즌, 악기의 주고받는 패시지의 극적인 대조가 주를 이루어 진행되고 Pf. 인사이드로 끝이 난다. 남정훈 작곡가의 작품 특징이 아낌없이 드러난 Melos는 새롭게 선정된 작곡가의 세계초연 작품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겼다.

 

한국작곡가협회의 2023년 첫 번째 연주회로 개최된 이 날의 연주회, 2023 KCOA Music Festival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Ⅰ은 청중의 감각을 금세 이동시키는 공감각적인 경험으로 가득했으며 재미있는 시도들과 다채로운 사운드들은 다양한 형식과 편성으로 꾸려진 선물과도 같았다. 작품 속 공간에서의 여운을 느끼며, 어떤 모양과 어떤 향기가 담겨있는지 모르는 선물포장을 열어보는 상상을 하며 다음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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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기 작협기자단 김이현 기자 (kimyihyeon3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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