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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협기자단

[리뷰]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 - 서주연 기자 2023-04-08 148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서주연

 

지난 322일 수요일 늦은 730, 예술의전당 리사이틀 홀에서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이 열렸다. 이날 연주에 앞서 시행된 세미나에서는 음악, 재현의 문제라는 주제 하에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으며, 이어서 진행된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에서도 관념, 추억 등의 재현이라는 주제를 지닌 다양한 창작곡이 발표되었다. 작곡가 개인의 특별한 경험이나 생각, 또는 판소리와 같은 예술 작품을 보고 느낀 것을 음악으로 재현한 창작곡들을 선보인 이번 공연은, 관객들에게 의미 있는 연주를 선사하였다.

 

1부의 첫 번째 곡은 대전현대음악협회 한대섭 작곡가의 <바이올린 독주 Big Waves(2019/2020)>이었다. 따스하거나 시원한, 그리고 때로는 거친 여러 바람의 형태를 모두 담은 이 작품은 말 그대로 알록달록, 다채로웠다. 바람의 모양, 질감, 소리, 심지어 색깔마저 그려낸 이 작품에서는 바이올린의 다양한 음색의 조합으로 바람을 표현하였다. 이 곡을 연주하는 독주 악기로 바이올린을 선택한 의도가 무척 뚜렷하게 느껴졌다. 바이올린의 섬세하면서도 선명한 하모닉스로 시작되는 곡의 도입부는 작은 틈을 비집고 부는 바람의 가느다란 소리처럼 느껴졌다. 작고 정교한 바이올린의 하모닉스를 듣고 있으니, 필자의 숨 쉬는 소리가 음악을 방해할까 조심스러워지기도 하였다. 이내 실제 바람의 소리는 우리의 숨소리보다 작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바람 그 자체를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이 곡에 감탄을 느끼게 되었다.

 

두 번째 곡은 젊은음악인의모임 박현숙 작곡가의 <해금, 가야금, 타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시간의 기억-놀이1(2021)>이었다. 누구에게나 익숙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선율을 모티브로 택하여, 이 곡의 주제인 놀이를 효과적으로 표현하였다. 순수하고 원초적인 즐거움의 놀이를 단순한 세 개의 기초음에 기반하여 다양하게 구성한 점이 재미있었다. 국악기와 서양악기, 그리고 전통놀이의 만남이라는 뜻 깊은 의미를 전달하였지만, 서양악기인 피아노, 타악기와 국악기의 만남이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피아노의 현을 직접 뜯는 주법은 발현악기인 가야금과의 연관성을 통해 조화를 이루어냈다.

 

세 번째 곡은 신음악회 진희연 작곡가의 <첼로 독주 위로(2021)>이었다. 화가 전이수의 그림 <위로3>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된 이 곡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전하며 위로를 건넨다. 이 곡에서는 글리산도와 화음이 빈번하게 등장하였고, 연주 시에 비브라토를 최소화하였다는 점도 특징적이었다. 같이 이겨내자는 위로의 주제를 떠올려 보았을 때, 글리산도는 음들 사이의 연속성을 통해 혼자가 아니라는 메시지를, 화음은 여럿이 함께하는 화합과 조화를 표현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구성된 선율을 비브라토가 적은 소박한 주법으로 연주하는 것은, 진솔한 위로의 말 한 마디를 건네는 것처럼 느껴졌다.

 

인터미션 이후에 이어서 연주된 네 번째 곡은 ISCM-Korea 김지현 작곡가의 <판소리와 6중주를 위한 춘향의 말(2022)>이었다. 시인 서정주의 연작시를 바탕으로 순서를 재구성하여 작곡된 이 곡은, 원작의 춘향보다 더욱 진취적인 여성상을 표현한다. 음악극으로 연주되기도 한 이 곡은 극적으로 춘향의 서사를 이끌어갔다. 곡의 형식 측면에서 전통적인 요소들이 관찰되어 극적인 진행이 비교적 쉽게 이해되었으나, 피아노 현을 뜯는 등의 현대적 주법 역시 효과적으로 녹아들며 한 편의 웅장한 서사시를 그려내었다.

 

다섯 번째 곡은 작곡가일번지 이재구 작곡가의 <비올라 독주 놀이(의 이유)(2021)>이었다. 앞서 연주된 박현숙 작곡가의 <해금, 가야금, 타악기와 피아노를 위한 시간의 기억-놀이1(2021)>와 같은 놀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지만, 전혀 다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앞서 연주된 박현숙 작곡가의 곡이 어린 시절의 놀이에 대한 향수와 즐거운 추억을 그려내었다면, 이재구 작곡가의 곡은 더욱 사색적인 의미를 담고 있었다. 놀이의 승자와 패자라는 이분법을 극복하겠다는 깊은 의미를 지닌 이 곡에서, 독주 악기인 비올라는 특유의 성숙한 음색과 날카로운 스피카토, 피치카토 등 다양한 주법으로 주제를 표현해냈다.

 

마지막 곡은 이날의 수상자였던 2023 파안생명나무 남정훈 작곡가의 <플루트, 클라리넷,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를 위한 Melos(2022)>이었다. 선율, 더 나아가 하나의 선에서 파생되는 수많은 미시적인 부분들과 그 원리를 분석하여 작곡된 이 곡에서는 치밀한 구성이 돋보였다. 곡의 프레이즈가 매우 명확하게 나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한 프레이즈가 끝난 후에 모든 연주자들이 짧은 휴지를 갖지만 이내 곧 악기가 점차 추가되며 고조되어 또다른 프레이즈를 완성한다. 발단과 고조, 해결을 통한 포물선 모양의 프레이즈는 섬세한 선을 그려내듯 연주되었다. 연주자들 간의 호흡과 소통이 특히 돋보였는데, 각 악기 주자들은 다양한 현대음악 주법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도 하였다.

 

이날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에서 연주된 여섯 작곡가의 곡은 재현의 큰 틀 아래에서 각각의 뚜렷한 메시지를 노래하고 있었다. 각 곡을 표현하는 주법과 음색은 무척 다채로웠으며, 청중이 다각적인 감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뜻 깊은 창작음악을 선보였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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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기 작협기자단 서주연 기자 (glyceria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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