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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협기자단

[리뷰]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I> - 서주연 기자 2023-07-08 118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서주연


지난 531일 열린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Ⅱ》에서는 음악적 상상, 보는 음악과 듣는 음악이라는 큰 주제 하에 작곡된 다양한 작곡가들의 곡들이 연주되었다. 이날 연주된 곡들은 상상과 지각을 강조하는 하나의 주제를 공유하고 있었고, 다양한 음색과 주법들을 바탕으로 특정 장면이나 감정을 연출하였다.


가장 먼저 연주된 곡인 미래악회 박은경 작곡가의 피아노 독주를 위한 운용(2022)은 마르쿠스 가브리엘의 저서 예술의 힘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낮의 하늘을 바라볼 때 스스로가 태양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마르쿠스 가브리엘에 의하면 이는 태양의 본질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태양을 지각하는 방식일 뿐이다. 이러한 흥미로운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가 지각하는 객체로서의 음악을 다양한 질감, 음향의 양감으로 표현한 이 곡은 추출된 소리 각각에 집중하려 의도한 만큼 곡의 진행 중간에 단절의 구간들을 삽입하였다. ! 하는 음향은 장면이 바뀔 때마다 특정 음형을 연주하는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연상케 했다. 모티브의 반복에 적용된 독특한 음색, 질감은 우리가 상상하고 지각하는 음악을 그려내었다.


이어서 연주된 뮤지콘 문지은 작곡가의 두 대의 바이올린과 비올라를 위한 연습, 실험(2022)은 음악적 다양성을 기반으로 쓰인 자유로운 형식의 곡이다. 즉흥성이 강조되는 이 곡에서는 글리산도, 트릴, 돋보이는 비브라토와 트레몰로, 미분음 등 다양한 요소들을 활용하여 실험적인 시도를 전개하였다. 음악소리는 사이렌 소리를 연상케 했으며, 활 털이 끊어질 정도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연주자들이 인상적이었다.


동서악회 이복남 작곡가는 고려가요를 가사로 한 판소리 형식의 노래 고려가요 주제에 의한 2개의 노래 송인(送人)_서경별곡_()_쌍화점〉》(2022)을 발표하였다. 이 곡에서는 해금 연주자, 가야금 연주자, 가창자, 타악기 연주자, 생황 연주자로 구성된 앙상블을 통해 풍부한 음향을 연주하였다. 송인과 서경별곡을 남성 가창자의 목소리로 노래한 점이 독특하였고, 가창자와 무용가의 춤이 더해져 듣는 음악을 넘어선 보는 음악을 구현해냈다.


향신회 박명황 작곡가의 알토 색소폰과 피아노를 위한 실례지만 지금 불타고 계십니다(2019, 2022 개정)는 제목에서부터 느껴지듯 유머러스한 곡이다. 인터넷 밈(meme)으로 소비되는 문장을 고난이도의 음악과 결합하여, 가벼운 유머를 구사하면서도 어딘가 학구적인 느낌을 풍기는 이중적이고 재미있는 곡이 탄생하였다. 무엇보다도 연주자들 간의 호흡과 열정이 돋보였다.


작곡동인 델로스 이의진 작곡가의 비올라와 피아노를 위한 길 위에서(2022)길을 걸어가는 나를 통해 인생을 담아낸 곡이다. 행복하고 즐겁기도 하지만, 불안과 긴장이 엄습하기도 하는 인생의 나날들을 비올라와 피아노의 호흡을 통해 표현해냈다. 비올라와 피아노는 서로 맞물리지 않고 따로 부유하듯 다른 음형을 연주하며 계속 나아갔고, 음악은 계속 고조되었다. 크레센도를 통해 소리가 커지며 격양되던 음악은 별안간 수비토 피아노를 만나 다시 잠잠해졌다. 이는 반복하고 순환하며, 좌절되었다가도 다시 해가 뜨고 이어지는 하루하루의 인생을 그려낸 듯하다.


한국여성작곡가회 강미정 작곡가의 플루트, 첼로, , 피아노를 위한 꺼래이(2022)는 식민지의 애환과 시베리아의 추위 속의 힘든 삶을 그려낸 백신의 작가의 소설을 바탕으로 하였듯 무척 극적인 곡이었다. 직접적인 연기나 가사는 수반되지 않았음에도, 음악만으로 장면을 충분히 그려냈다. 지속음과 글리산도를 통한 하강 음형을 연주하며 곡의 긴장된 분위기를 이끌어간 플루트는 배경이 된 소설의 주인공인 순이를 상징하는 악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순애 원로작곡가의 가곡 사랑, 사월의 노래는 흔히 떠올리는 현대음악답지 않은 익숙한 곡이었다. 정말 아름답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듣기 편안한 곡조이지만, 대체화음과 5음음계, 6화음 등이 다채롭게 활용되어 신비로운 색채를 구현해냈다. 이 곡을 듣고 나서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시도를 전개해가는 현대음악의 경향 속에서, 정말 좋은 음악이란 새롭고 기발한 음악일까 아름답고 듣기 좋은 음악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하게 되었다.

이번 공연을 통해 단순히 청각으로 지각되는 음악을 초월한 음악들을 만나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앞으로의 다양한 시도들이 더욱 기대되는 바이다.


https://m.blog.naver.com/glyceriac/223150537454

제 9기 작협기자단 서주연 기자 (glyceria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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