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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1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V 리뷰_ 음악춘추2021_11월호 2021-11-04 210

음악 작품의 독립적 실존을 위하여:비미학

(2021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

장유라[철학박사(예술철학전공)]

 

106일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2021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 제전 은 코로나로 지친 음악계에 단비와 같은 시간이었다. 연일 2천 명을 웃도는 코로나 신규 환자들이 나오는 현실이다. 그러나 필자를 비롯한 연주자들, 관객들 모두 마스크를 쓰고 옆자리를 비워둔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을 하는 가운데 우리는 이 시간 음악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었다. 사실 작년 6‘2020년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 제전 의 세미나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업로드를 하고 무관중 연주회를 보고 공연 리뷰를 쓸 때만 해도 일회성이겠지 했다. 오늘의 판단이 얼마나 미래 착오적인가. 우리는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얼마나 무력한 인간들인가. 그래서일까 특별히 이번에 공연된 작품 하나하나는 독립적인 실존을 보여주는 귀한 작품들이었다.

첫 번째로 선보인 강동규,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어변성룡도>(魚變成龍圖)(2020)는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중국 등용문의 고사를 그린 민화를 보고 작곡한 곡이다. 긴장감 넘치는 화성과 리듬으로 생동하는 물고기를 표현하였으며, 물속의 심연을 그리고 있는 2악장에서는 다소 무거운 음향에 묵직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누구나 이 그림을 보고 작품을 만들겠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펄떡이는 물고기의 생명력에서 작곡가에게 다가온 것은 삶의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싶은 것이지 않았을까. 보이지 않는 심연의 바다에서도 끊임없는 움직임이 있듯이 잠잠한 내면에 꿈틀대는 욕구는 나 살아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작곡가는 이번 공연을 위해 중간 부분을 수정하여 곡의 긴장도를 높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어서 연주된 최지순의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타악기를 위한 <길의 다스름>은 작곡가의 심적 고민이 많이 담긴 작품이다. 작곡가는 개별 영상을 통해 마음에 대해 허심탄회 풀어낸다. 마음의 첫 모습은 어떠한 것이었을까. 빈 마음, 채워진 마음, 지금의 마음처럼 정말 마음이라는 것이 실재하는 것일까. 집착과 시작의 경계에서 어찌할지 몰라 하는 작곡가의 고민이 그대로 작품에 투영되었다. 그럼에도 음악은 이리 아름다울 수 있다니. 아마도 작곡가의 다스름의 길은 소리 안에서 스스로 제 길을 찾는가 보다.

 

문경해의 현과 피아노 트럼펫을 위한 <달빛 비친 주황색집>(2020)에서 느낀 필자의 첫 소감은 말이 없는 음악이 말을 걸어온다는 것이다. 1악장은 인생 속에서 진정한 나의 꿈은 무엇인지 끝없이 의심하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2악장은 갇힌 곳을 과감하게 나오며 현실 속에서 자신의 과거 현재의 퍼즐을 하나씩 맞추며 미래를 위해 인생의 길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렸다는 작곡가의 말보다는 음악 안에서 들려오는 낮은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는 곡이다. 트럼펫과 피아노의 소리가 답답한 현실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효과로 그만이었다. 음악이 나눠주는 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곡이었고, 음악에 이름 붙이기에 대해 숙고할 기회를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신영자 시인의 시조집 <어머니의 정>에서 꽃과 관련된 세 개의 시를 골라 연가곡으로 꾸며 보았다는 심옥식의 소프라노, 첼로, 피아노를 위한 연가곡 <꽃으로 피어난 그리움>은 아마도 봄에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라 추정된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봄 내음이 그렇고, 곡이 주는 신선함도 그러하다. “봄이 되면 새롭게 피어나는 꽃들처럼 코로나로 인해 힘들고 지친 지난 2년간의 생활이 어서 끝나서 새로운 희망을 품어볼 수 있길 바라본다는 작곡가의 프로그램 노트에서 따뜻한 위로가 느껴진다. 필자는 아름다운 시어에 어울리게 아름다운 선율이 함께하는 심옥식 작곡가의 연가곡에 나타나는 음악적 특징을 자유라고 지어보았다. 한 연을 노래하는 동안 8번의 박자 변화가 있으며, 적절한 곳에 사용된 페르마타와 리타르단도는 자연에서 느끼는 신선한 자유를 노래한다. ‘학의 마지막 날갯짓은 첼로의 팔 움직임으로 형상화되어 하늘을 향해 자유롭게 비상한다.

 

김천욱의 피아노 연탄 <존재, 소멸 그 이후>는 그동안 세 편의 오페라를 발표한 작곡가의 작품세계를 매우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결코 가볍게 들을 수 없는 곡이다. 존재의 무거움이 땅 속으로 꺼져버릴 듯 한참을 이어진다. 피아노 연탄으로 존재의 무거움이 저렇게 표현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숨을 죽이고 음의 진행에 몰입하게 된다. 피아노 안에 손을 넣어 소리를 달리 표현하는 것도 긴장감을 상승시킨다. 작곡가의 혼이 담긴 존재, 소멸의 이야기는 처음 곡을 접한 이후 계속 마음에 남아 그 마음을 헤아리게 한다. 작곡가의 작업은 참 묘한 힘을 가진다.

 

고 정윤주 작곡가의 <현악4중주 1>(1950)은 작곡 당시 우리나라에 현악4중주단이 없어 초연을 못했다가 10년 후 서울현악4중주단에 의해 공연된 작품이다. 그 후 제1회 국제음악회 실내악 밤에서 재연되고, 미국 하와이에서 매년 개회되는 금세기 음악제에서도 공연된 바 있다.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에서 지금의 한국 창작 음악을 있게 한 선배 작곡가의 작품이 공연되는 것에 큰 감흥이 느껴진다. 통영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진규영 작곡가는 자신의 고등학교 선생님 곡이 연주되고, 아드님을 직접 뵙는 귀한 시간을 갖기도 하였다. 이 순간이 모두 우리 음악계의 역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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