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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1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V 리뷰_ 음악춘추2022_01월호 2022-01-05 239

2021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V리뷰

음들의 경합과 공존 사이, 리좀의 미학!

서울대학교 음악학 박사

손민경

 

지난 1124일에 열린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V>에서는 음 구성 요소들의 공존과 경합이 다각적인 층위에서 얽히고 섥혀 독특한 현대 예술을 선사하였다. 코로나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현장을 찾아 객석을 조금씩 채워나가는 관객들, 무대 위에 거침없이 울려 퍼지는 소리들을 통해 꺼지지 않는 창작자의 외침과 창작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날 연주된 작품들은 재료와 구상에 따라 매우 독립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지만, 치밀하고 정교하게 흘러가는 음들 속에 창작자의 현대적 사유와 예술적 구상은 예외 없이 함께 공존해 있었다.

이는 기존의 정전화된 관습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자신의 경계를 벗어나 여러 이질적 요소들과의 연결접속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의미하는 들뢰즈의 리좀(Rhizome)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해 볼 수 있었다. 이번 공연을 돌아보는 것은 이질적 음들의 조합과 분화로 뻗어나가는 소리 줄기를 동시대 예술의 미학적 지형도 속에서 고찰할 기회가 되었다.


양민석의 <베이스 클라리넷과 실시간 전자음악을 위한 소리의 주변’>(2021)은 재료 사용의 층위에서 리좀의 의미가 드러났다. 악기 본연의 음색이나 소위 악보에 이 표기된 노트들에서 벗어난 소리에 대한 실험을 들려주고 있었다. 예를 들어, 하모닉스, 스퀵, 히스, 오버블로잉, 그로우링 톤 등 일반적으로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베이스 클라리넷의 음색에서 다소 이탈된 소리를 구사하고 있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운드, 소음과 악음이 경합하면서 악기의 묘한 음색을 더해주고 있었으며, 그러한 소리가 좀 더 주체적인 위치에 나오고 있었다. 그간 타자화된 소리를 끌어 올려주고, 전통적인 관념을 재환기하여 재료간의 탈중심화를 이끌어낸 순간이었다.

 

박선영의 <피아노 솔로를 위한 ‘self reflection’>(2019)은 창작자의 기억과 내면의 의식을 반영하는 과정에서 리좀의 의미를 비춰내었다.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던 작곡가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쓴 이 작품은, 소리 내용과 진행 과정에서 창작자의 일기장을 들어볼 수 있었다. 짧은 악구들이 중간마다 튀어나오는 듯한 움직임은 작곡가의 옛 기억의 조각들이 어렴풋이 등장하는 듯하였다. 기교적으로 어려운 패시지와 불협화음은 반복적으로 연습하는 과정에서 느낀 무거운 심리가 재현되었고, 갑작스러운 클러스터의 연음과 고음의 프리페어드 음색은 훈련 중의 소소한 자유와 유머러스함이 느껴지기도 하였다. 예측불허한 곳에서 쇼팽의 피아노 에튜드 <겨울바람>의 일부 선율이 직접 인용되어 극적인 효과를 주기도 했으며, 프리페어드 음색의 그라데이션적 울림은 기억이 점차 사그라지는 듯 했다.

   

김민지의 <플룻,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 타악기를 위한 ’>(2020)은 표제를 담아내는 동적인 감각에서 리좀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밤하늘에 떠 있는 별들이 실제로 살아있는 듯 감각적인 소리와 악기별 산뜻한 주법의 진행으로 별들의 일대기를 흥미롭게 들려주었다. 각각의 악기들은 본연의 소리와 바깥소리를 넘나들며 독특한 음색을 뿜어내었고, 연주자의 신체 기관을 활용하여 별의 생동감과 자연의 신비를 표현하였다. 별의 음형을 암시하는 단편구들은 다른 악구와 연결되어 이동감을 보여주었고, 악기 간의 중첩과 교차를 통해 잠재적인 서사적 기능을 발휘하여 별의 탄생과 성장, 소멸과 재생을 그려내었다. 특히 오늘 연주에서는 곡 초반과 말미에 티벳 악기인 팅샤를 도입하여, 맑고 투명한 분위기를 돋보여주고 있었고, 곡 전반적으로 제목의 대상이 음악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높은 접근도의 표제음악을 들려주고 있었다.

 

2부에서는 1부보다 이전 세대들의 작품과 원로 작곡가들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정종열의 <피아노 솔로를 위한 ‘clear/unclear’>(2021)은 음악의 구조와 진행의 층위에서 리좀의 사유가 느껴졌다. 이 작품은 작곡가의 개인적인 질문이었던 진정한 명확성을 찾기 위한 시도로 출발하였고, 음악의 매개변수를 통해 양극단의 경계를 설정하여 이를 다층적인 맥락에서 표현하고 있었다. 악보에서는 불규칙한 위치의 악센트나 갑작스러운 변박의 삽입 등의 장치로 독특한 비트를 형성하고 있으나, 실제 음악에서는 음들의 진행에 힘을 실어, 음이 가고자 하는 방향에 주체성이 부여되었다, 특히 피아니스트 손지혜의 강렬한 표현적 해석을 거쳐 음악적 진행이 형식이 되는 순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점은 음악의 전통적인 선형적 시간성에 대해 거리를 두고 현대적 사유에서 시간의 재영토화를 형성해주고 있었는데, 아마도 빠르고 복잡하게 돌아가는 현시대의 삶을 미메시스 하고자 하는 작곡가의 의식이 아닐까 생각된다.

 

이윤석의 <현악 4중주를 위한 레가토’>(2021) 개념의 용례와 선험적 공간에 대한 리좀의 의미가 드러났다. 음악에서 흔히 나타나는 주법인 레가토의 의미를 재해석한 이 작품은 건반악기에서 시도한 주법을 현악기 그룹에 새롭게 적용한 것이다. 음들의 연결을 작은 단위인 모티브뿐 아니라 보다 큰 형식의 단위로까지 음향 간의 연결과, 현재 울리는 소리와 지나간 소리와의 연결을 통해 확장되었다. 특히 연주자들의 현란한 활 놀림과 거친 움직임 때문에 활털이 거의 나감에도 불구하고 선명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이를 사리지 않는 열정적인 정신이 돋보였다.

  

마지막으로 원로 작곡가 김달성의 <플루트, 오보에,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오중주곡’>(1961)은 당대의 기법과 음 조직의 측면에서 리좀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예술 음악에 민족적 정서를 살리는 의식을 갖고 서양 현대음악과 한국음악의 융합을 추상적 단계로 심화한 작품이기도 하다. 김달성 작곡가는 현대음악 창작계의 1세대 작곡가로 창작과 음악이론, 음악 교육 발전에 중요한 발판을 마련하였다. 1921년 함경남도 함흥에서 출생하여 어린시절을 보내다가 서울대에서 작곡을 공부하고 오스트리아로 건너가 빈 국립음대에서 수학하였다. 귀국 후 다수의 창작 발표회를 개최하면서 대학교수로 활동하여 후학을 양성하였다. <오중주곡>은 오스트리아 유학을 마친 뒤 작곡한 곡으로, 이론가 요세프 하우어의 12화음렬의 영향이 나타난다. 12음렬 중 가운데 음을 중심으로 6개의 음이 서로 마주 보는 공간의 관계로 화음 배열을 구축시킨 이 이론은 기존의 쇤베르크 12음렬에서 선율의 관점에서 배치한 것과 차원이 다르다. 한국 창작계 당시 서구 음악의 급진적인 수용으로 전통과 현대음악의 양분화된 문제에서 우리 고유의 음악이 현대음악에서 살릴 수 있는 방향성을 모색한 흔적들이 들려왔다.


2021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V에서 만난 작품들은 리좀의 미학적 관점에서 창작자의 관념, 표제적 의미, 양식적 기법 등을 망라하여 개성적인 음악언어를 말해주고 있었다. 특히 현대음악의 지나온 발자취와 현재의 소리를 잇는 작업을 한 공간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음들의 공존과 경합을 들으며 전통적 관념을 흠집내는 작업을 거치거나, 표제의 대상인 자연을 노래하거나 음악 내적인 재료들의 관계와 구조를 재조정하는 등 전통적인 기법과 현대적인 양식이 함께 공존과 경합을 펼치고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궁극적으로 들뢰즈적인 의미에서 이질적인 두 개체의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마주쳐 변화를 일으키는 독특한 구성을 재상기할 수 있었다. 즉 익숙한 주법이나 소리의 틀에서 벗어나 그간 상이했던 개체들과 접촉되어 다방면으로 뻗어나가는 생각의 무한한 뿌리줄기를 통해 새로운 인식과 감각을 전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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