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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2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II 리뷰_ 음악춘추2022_11월호 2022-11-08 166

 현대음악, 현재(現在)를 연주하다.” 


음악학자 백은실


2022년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의 세 번째 공연이 928일 일신홀에서 열렸다. 2007년부터 지속된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은 동시대 한국 현대음악 작곡가들의 우수한 작품을 소개해왔다. 현대음악이라는 용어가 가진 포괄적인 의미의 한계 속에서, 이날 연주된 작품들은 현재를 연주한다는 하나의 목적으로 귀결되었다. 최근 2년여 동안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도 한국 창작가들은 작곡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현재에 맞닥뜨려 이를 작품의 소재로 활용하고 있었다.


임승혁의 바이올린과 Live audio-visual media를 위한 짧아짐 V’는 전자음악 작품으로 소리와 영상을 제어하여 짧아짐이라는 핵심 아이디어를 전개시켰다. 바이올린 솔로가 실시간으로 녹음, 녹화되어 딜레이(delay)라는 기술을 통해 시간차를 두고 재생되는데, 이 딜레이의 간격은 점차 짧아졌다. 뿐만 아니라 딜레이의 간격이 짧아지는 동시에 성부들이 하나씩 추가되었다. 작품은 딜레이 간격과 성부 수가 서로 반비례하면서 끝을 향할수록 새로운 소리를 만들어냈다. 기술의 사용으로 작곡가는 관객들에게 어쿠스틱한 악기 소리를 이용하여 새로운 소리와 영상을 선사했다.


양진경의 플루트와 가야금을 위한 비대면 사회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현재를 반영한 작품이다. 코로나19로 삶의 방식은 완전히 바뀌었고, 특히 소통에 있어서 비대면이라는 새로운 방식이 대두되었다. 작곡가는 새로운 소통에 적응해가는 우리의 모습을 서양악기 플루트와 동양악기 가야금을 통해 묘사했다. 두 악기는 단2도의 불협화에서 시작했다. 이들은 하나의 음으로 모이거나, 혹은 하나의 음을 두고 서로 맴돌 듯이 연주되었다. 작품은 크게 두 가지 유형의 소통을 보였다. 먼저는 다른 지역의 두 악기가 함께 연주되는 소재 상의 소통이 있었다. 다음으로 각 악기 간의 음정 간격이나 이들이 연주하는 음형의 유사 혹은 대조를 통해 보이는 음악적 요소의 소통을 보여주었다.


이정연의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피아노를 위한 ‘Anything but Ordinary II’도 마찬가지로 코로나19를 겪은 현재 우리의 상황을 묘사해주는 작품이다. ‘평범하지 않은 모든 것으로 번역되는 제목에는 일상의 평범함이 특별한 것으로 바뀐 현 시대 상황이 내포되어 있다. 비교적 밝은 분위기로 평이한 일상을 묘사하는 A섹션, 그리고 이와 대조되는 분위기의 B섹션을 통해 팬데믹으로 인해 급변한 사회를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A섹션과 B섹션 사이 삽입된 피아노 솔로는 코로나19가 발생한 당시의 중단된 사회를 묘사하듯이 두 섹션을 분리하였다.


박케빈의 피아노를 위한 터의 휴식은 절망의 순간에 있는 우리를 위로하려는 의미로 작곡되었다. 전체 사용되는 음역대가 3옥타브를 넘지 않고, 긴박의 음들이 페달 없이 연주되어 희미한 지속음으로 구성되었다. 특히 지속되는 음들은 대체로 네 개의 음이 시간차를 두고 차례로 등장하며 하나의 음군을 형성했다. 작품은 전반적으로 자연스럽고 길게 지속되는 음의 진행을 통해 여유로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마치 휴식을 선사하는 듯한 작품을 통해 작곡가가 결코 팬데믹의 어려움에 침잠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한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이현주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여전히 멀리 있는은 앞선 곡들과 결을 조금 달리하여 미학적 요소를 작품에 활용했다. 작곡가는 극작가 브레히트의 소외 기법으로 부터 시작되고 미술가 마그리트가 사용한 낯설게 하기기법에 주목하여 작품의 아이디어를 전개했다. ‘낯설게 하기는 일상의 소재를 낯설게 만듦으로써 오히려 일상적인 것에 시선을 돌리게 하는 것인데, 작곡가는 이 곡에서 생일축하노래를 일상의 소재로 선택했다. 이 소재는 음정, 음색, 텍스처, 음역의 변화를 통해 낯설게 변형되고 작품 속에 흩트려졌다. 이처럼 일상적 소재의 뒤틀림을 통해 청자들은 오히려 낯설지만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연주된 김용진의 현악 5중주를 위한 비가는 이번 음악회에서 유일하게 원로작곡가의 작품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한국 창작계를 이끌어갔던 그에게서 작곡가로서의 가장 큰 특징을 꼽아 보자면, ‘음색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 음악회에서 연주된 비가또한 그의 음색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 준다. 현악기의 음색 변화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기법인 하모닉스로 시작하여 여러 성부가 쌓이면서 새로운 음색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특징은 몇 십 년의 차이를 둔 후대 작곡가의 작품과 함께 연주되는 데에 큰 거부감이 들지 않을 만큼 동화될 수 있는 진보한 것이었다.


작곡가마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전개시킨 소재는 기법, 기술, 스토리 등을 통해 저마다 다양한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어떤 이는 현재 상황을 그대로 묘사해주는가 하면, 또 다른 이는 기술을 활용하여 새로운 소리를 들려주었다. 또한 개인적인 미학적 관심을 적용하기도 하였다. 전형적인 현대음악의 특징들을 보여주면서도 특히 이번 음악회에서는 모두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오고 고민한 흔적이 엿보였다. 어쩌면 어려운 음악이라는 수식어가 먼저 붙는 현대음악은 이번 음악회에서 유난히 사람냄새 나는 음악들로 차있었다고도 할 수 있겠다. 작곡가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사람이라는 것을 대변해주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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