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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2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V 리뷰_ 음악춘추2022_12월호 2022-12-08 154

한국 현대음악의 전통과 현대성을 다시 생각하다.

 

심 지 영(서울대학교 음악과 이론·음악학 전공 박사과정)

 

서양 현대음악의 역사는 기존의 음악적 전통에서 탈피하는 저항의 시도로부터 다시 전통으로 돌아가는 재귀적인 형태로 발전해왔다. 조성음악의 어법에 저항한 쇤베르크도, 음에 대한 고정관념을 파괴한 케이지도 모두 음악사의 정전(Canon)이 되어 또 하나의 전통이 되지 않았는가. 그러나 한국 현대음악의 역사 속 전통과 현대성은 보다 복잡하다. 한국 현대음악에서 전통은 국악적 전통과 양악적 전통을 모두 지칭하며, 현대성은 서구적 '모더니티’(Modernity)와는 다른 한국만의 현대성을 모색하려는 역사적인 전()과정을 내포하기 때문이다. 전통과 현대성의 독특한 한국만의 역사를 가지고 20221026일 예술의 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있었던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의 네 번째 공연을 바라볼 때, 이 공연은 필자에게 특별한 의미를 남겼다. 지금 이 시대의 한국 작곡가들은 전통과 현대성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이는 1900년대 중반부터 시작되었던 한국 현대음악의 전통과 현대성과는 어떻게 다른가? 이 날 공연된 7개의 작품들은 이 질문에 대한 하나의 답을 제시해주었다.


1부는 현대 사회와 개인에 대한 두 작곡가의 음악적 해석을 담은 작품과 음악적 모방과 인용에 대해 새롭게 접근한 두 작품을 먼저 선보였다

첫 번째로 가진일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날개>는 코로나19로 병들어가는 현대 사회의 재도약을 새의 비상으로 표현한 작품으로, 1악장에서 셋잇단음형의 특징적인 리듬의 반복으로 표현되던 새의 힘겨운 날갯짓이 2악장의 클라이막스에서 긴 음가의 화려한 비상으로 이어지며 짜릿한 음향적 쾌감을 선사함과 동시에 공연의 기대감을 높여주었다.

두 번째로 원경진의 첼로 독주를 위한 <페르소나>는 사회의 규범과 관습을 내면화하여 자신의 본성과는 다른 성격으로 형성된 페르소나가 자아와 결합하고 분열하는 모습을 첼로의 음색, 리듬, 기법의 활용으로 그려내었다. 특히 2악장에서 새롭게 등장한 녹음된 첼로의 음향이 무대 위의 연주자가 연주하는 첼로의 음형과 대비되며 페르소나와 자아의 분열을 표현하는 방식이 신선함을 주었다.

세 번째로 홍승기의 플루트, 첼로, 피아노를 위한 <군접도>는 세 악기의 다양한 현대적 주법을 통해 군접도에 그려진 나비의 날갯짓을 음악적으로 재현하는 모방적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나비가 일으키는 날갯짓의 바람소리, 나비의 격렬하고도 우아한 날갯짓이 악기의 적합한 주법들로 표현되며 음악이 보이고, 그림이 들리는 공감각적 경험을 가능케 했다.

1부의 마지막 작품이었던 김도윤의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피아노를 위한 <빈티지 머신: 랍스터 크래커잭>은 새로운 인용방식을 통해 한국의 전통과 현대성을 사유하는 젊은 한국 작곡가의 하나의 대답을 들어볼 수 있었다. 서양음악의 텍스처와 국악의 시김새 등을 귀로 인식할 수 없을 정도의 짧은 패턴으로 분절시키고, 결합하는 독특한 인용방식을 차용하여 전통의 잔향만으로 전통과 현대성을 모두 상기시키는 새로운 상호텍스트성의 미학을 창출하였다.


1부보다 전통적인 색채가 강해진 2부는 먼저 신라시대의 설화인 <연오랑과 세오녀>의 이야기를 토대로 음악적 내러티브를 형성한 권유미의 가야금, 장구, 클라리넷, 피아노를 위한 <연오랑과 세오녀의 일월>로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동양과 서양의 악기, 어법의 혼합을 대중적으로 풀어내어 관객들은 마치 전통 설화 속 이야기에 들어간 듯한 기악적 드라마에 몰입할 수 있었다.

이병무의 현악 4중주를 위한 <콘페로>(Confero)현악4중주라는 전통적인 서양의 음악 양식과 편성을 실험하며 응용된 어법을 구사하는 현대성을 보여주었다. 마치 같은 노래를 서로 다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네 명의 사람이 부르는 것처럼 네 대의 현악기가 가진 주법, 형식에 대한 실험과 함께 음악을 구성한 다양한 대조들이 음악 속 다양 속의 통일’(Uniformity amidst variety)을 이뤘다.

마지막 무대는 초기 한국 현대음악의 전통과 현대성을 상기시키는 원로 작곡가 구두회의 <피아노소나타 a minor Op.36>였다. ‘소나타라는 조성음악의 전통 양식 안에서 12음 기법을 도입하여 서양음악의 수 세기의 역사를 단 한 순간에 수용한 한국 현대음악만의 고유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어 한국 현대음악의 전통과 현대성이 시작된 지점과 현재의 발전사를 귀로 체감할 수 있었다.


가진일, 원경진, 홍승기, 김도윤, 권유미, 이병무, 구두회. 7명의 작곡가들은 각기 다른 시각으로 전통과 현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에게 전통이란 서양음악에 있었고, 누군가에게는 한국에 있었다. 또한 현대성은 어떤 이에겐 서양의 새로운 음악어법의 도입에 있었고, 어떤 이에겐 새로운 음악 기법 및 주법의 사용, 새로운 시대의 정신에 있었다. 음악이 어딘가로 나아가고 있다거나 발전하고 있다는 선형적이고, 목적론적인 관점으로 현대의 음악을 바라보는 것은 무용한 일일 테지만,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에 연주된 일곱 개의 작품들을 통해 필자는 한국 현대음악의 역사가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의 노력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전통과 현대성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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