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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2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V 리뷰_ 음악춘추2023_1월호 2022-12-26 250

대한민국 실내악의 어제와 오늘

 

2007년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15년 이상 지속되어 온 대한민국실내악작곡제전은 명실상부 대한민국 창작음악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최고의 현대음악 연주회 시리즈라 하겠다. 무릇 실내악이라고 하면 비교적 적은 인원으로 연주되는 기악합주곡을 일컫는 것으로, 현악기와 관악기, 건반악기, 타악기가 여러 방식으로 조합되고 최근에는 인성이 포함되는 등 매우 다양한 편성이 가능하다는 특성을 지닌 장르이다. 특히 위촉이라든가 연주되는 장소 등 창작의 외부 조건이나 환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고 작곡되므로, 작곡가의 상상력이 무한하게 펼쳐지는 음악적 공간이라 할 수 있다.


2022년 대한민국실내악작곡제전의 다섯 번째 연주회는 이미 타계하신 원로 김성태 작곡가부터 한국 작곡계를 이끌어온 박인호, 임지선 작곡가, 그리고 이제는 중견 작곡가의 반열에 오른 이재홍, 고태암, 박수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세대를 아우르면서 대한민국 실내악의 과거와 현재를 만나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였다. 작곡가들은 자신이 태어난 시기의 사회와 세상과 조우하면서 그 시대를 이해하고 이를 음악에 풀어낸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세대 별로 예술사조와 작곡기법이 갈린다. 그러나 또 한편, 같은 세대 내에서도 작곡가들 각자가 가진 문제의식과 개인적 경험에 따라 개별 작품의 작곡 실제가 확연히 달라지기도 한다. 1130일 가을의 끝자락에서 열린 연주회에서는 작곡가들의 다양한 작곡기법과 의도, 메시지를 들을 수 있었다.


원로 작곡가 김성태의 <협악합주를 위한 모음곡>(1956)은 작곡된 시기가 1950년대임을 감안해볼 때, 서구 예술음악의 형식과 기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자 한 작품으로 읽힌다. 이 곡의 구조는 프렐류드(Prelude) 댄스(Dance) 변주가 붙은 노래(A Song with Variations) 피날레. 푸가(Finale. Fugue) 순의 4악장 구성으로, 여러 개의 짧은 악장으로 자유롭게 구성된 근대 모음곡의 형식으로 되어 있다. 프렐류드에서는 주요 모티브와 선율이 악장 전체에 걸쳐 반복되고 변형되는 것을 보여주며, 2악장 댄스는 박자의 변화가 눈에 띠며 부점리듬을 활용하여 말 그대로 춤곡을 연상시키는 악장이다. 3악장은 변주곡 형식으로 시작 부분에 제시된 주제가 악기를 달리 하며 반복되고, 푸가 형식으로 된 마지막 피날레는 푸가 기법을 엄격하게 적용하였다. 그런데 이 작품의 흥미로운 지점은, 이처럼 과거 서양음악의 기법과 형식을 적극 가져오면서도 한국음악의 전통 음계나 장단을 떠오르게 하는 한국적 인상을 청중에게 선사한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역동의 20세기를 살았던 작곡가의 숨겨진, 어쩌면 의도된 메시지가 아닐까 싶다.

 

이날 연주된 여섯 개의 작품 중 두 곡은 피아노 독주를 위한 것으로, 최신의 경향으로 21세기 피아노음악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주었다. 먼저 박인호 작곡가의 <3 개의 스케치가 있는 악장>은 피아노와 전자 음향이 함께 쓰였는데, 피아노 특유의 소리 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음색이 변화되고 제목에서처럼 피아노와 전자음향이 동시에 울리면서 음색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다양한 주법과 전자음향의 활용함으로써 소리의 질감과 색, 결을 탐구하는 작품이었다. 이재홍의 <Repitition>은 세 개의 소품으로 이루어진 짧은 모음곡이며, 제목 그대로 반복이란 주제로 작곡되었다. 1곡에서는 시작 부분에 제시된 모티브가 반복, 변형되고, 2곡과 제3곡에서는 각기 독립적인 음향 블록이 병치되어 등장한다. 이 작품은 반복이라는 동적 행위를 통해 청자로 하여금 음악의 역동적 운동성을 체감하게 했다.

 

작곡가를 둘러싼 세상과 사회, 환경에 대한 창조적 응답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작품도 여럿 있었다. 임지선의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를 위한 <부다페스트의 이방인>은 작곡가가 형가리 부다페스트에서 한 달간 체류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이 곡에는 헝가리 민요 <봄바람 물결 만드네>의 선율이 인용되어 있는데, 이 선율은 선명하게 인지될 때도 있지만 자유롭게 해체되거나 새로운 화성과 선율을 만나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되어 인식이 불가능하기도 하면서 익숙함낯설음의 경계를 넘나든다. “세계를 향한 낯설음이야 말로 예술이 탄생하는 순간”(Fremdheit zur Welt ist ein Moment der Kunst)이라는 아도르노의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고태암의 현악4중주를 위한 <Re- >의 곡 제목은 다시라는 뜻의 접두사에서 파생된 두 단어, 재현 혹은 재창조(recreate)와 재파괴(redestroy)의 의미 둘 다를 내포하고 있다. 이 곡에서 중심이 되는 d음은 배음렬에서 파생된 주요 음들을 재창조하거나, 불협음 혹은 소음과 같은 효과를 내는 음향, 반음계적 음향, d 오버톤에서 제외된 음들을 재파괴한다. 이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상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과거의 일상을 잃을 것 같은 두려움과 미래에 펼쳐질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가 교차되는 상황을 상징적으로 표상하고자 하는 작곡가의 의도를 반영하는 작품으로 읽어낼 수 있다.


박수정의 소프라노와 피아노3중주를 위한 <두드리다>는 작곡가의 시적 상상력이 극대화된 작품이다. 토마스 트란스트뢰미르의 프렐류드와 강은교의 를 텍스트로 하여, 여행과 같은 자유로운 활동이 제한된 현실을 가볍게 뛰어넘어 더 넓은 세상과 조우하는 작곡가의 다채로운 상상을 담았다. 텍스트를 섬세하게 표현하는 소프라노의 음악적 해석과 이에 못지않은 연주자들의 강렬한 제스처는 음악이라는 예술을 매개로 작곡가와 청중이 감정을 공유하고 교류하는음악 고유의 전통적, 낭만적 가치의 회복으로 보였다.

 

2022 대한민국실내악작곡제전 V는 대한민국 실내악의 어제와 오늘을 보여주었다. 1950년대부터 현재까지 작곡된 작품들은 작곡가 저마다 세계와 부딪히면서 생성된 고유한 주제의식과 사유, 감정이 다양한 작곡기법과 구성원칙, 연주주법, 표현양식 등과 만나 다채롭게 펼쳐지는 음악적 공간이라 해석할 수 있겠다. 아마도 대한민국 실내악의 내일은 이날 객석에서 함께 했던 젊은 작곡가들과 학생들의 몫일 테다. 한국 현대음악이 걸어온 발자취가 그러했듯,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고독한 길이라 해도 앞으로도 여여히 흐를 그 길에 묵묵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낼 이들에게 미리 감사와 응원을 보낸다.

 

강지영(음악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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