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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II 리뷰_ 음악춘추2023_10월호 2023-10-10 182

유무상생(有無相生): 같이 또 따로의 가치 



김지은

음악학자




『도덕경』 2장에서 노자가 설명하는 ‘유무상생(有無相生)’은 ‘있음’과 ‘없음’이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음을 지칭한다. 이 개념은 음악과도 크게 닮아있는데, 높은 음과 낮은 음, 긴 음과 짧은 음, 여린 음과 센 음 등이 대비와 조화를 이루어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어쩌면 이 말은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더욱 우리 곁에 다가온 철학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있음’과 ‘없음’의 경험을 통해 ‘같이’와 ‘따로’라는 가치에 대해 깊이 있게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 가운데, 2023년 9월 6일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Ⅲ은 이윤경, 설수경, 임현경, 오예민, 남진, 김정길 작곡가들의 작품을 통해 음악에서 ‘따로’와 ‘같이’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유무상생의 철학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윤경의 〈Solitaire et Solidaire (고독하지만 연대하는)〉은 베이스 클라리넷, 바이올린, 첼로 트리오로, 알베르 카뮈의 소설 『페스트』에서 영감을 받아 질병, 고독, 사람들 사이의 연대라는 주제를 나타냈다. 악기들은 상호작용을 통해 개인과 집단 사이의 긴장과 해소를 반복적으로 표현했는데, 베이스 클라리넷은 페스트를 상징하며 작품의 서사를 이끌었다. 후반부의 하행 음형은 페스트에 감염된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그렸고, 상행 음형으로 전환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이 구조에서 카뮈의 소설 속 인간 정신의 복원과 회복, 현대 사회의 복잡한 정서가 느껴졌다. 


설수경의 〈Coexistence〉는 첼로 독주를 위한 작품으로, 현대 음악에서 상충하는 요소들이 조화롭게 통합되는 공간을 창출하는 시도로 보였다. 작품은 첼로의 폭넓은 음역을 활용하여 다양성을 강조하면서, 반대의 특성을 지닌 음악적 원리들을 현대적인 연주 기법으로 표현했다. A음을 기준으로 중심선율을 구축, 다양한 변이와 반복을 통해 복잡성과 단순성, 깊이와 표면적인 요소들이 교차하는 음악적 공간을 만들었다. 연주자는 이러한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나 자신’의 역할을 하며, 연주 기술 뿐 아니라 작품의 철학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능력이 요구되었다. 


임현경의 〈이음〉은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작품으로 악기의 물리적 특성을 활용해 공간감을 만드는 방식이 특징적이었다. 작품은 동일 음정에서 출발해 다양한 음으로 발전하며 복잡하고 유기적인 질감을 만들어냈다. 작곡가는 여러 가지 이중적인 요소를 활용하여 음악적 진행을 미세하게 조절하고 엮었다. 작품 전반에서 독특한 소리 풍경과 및 동적인 효과를 느낄 수 있었는데, 유려한 소리의 질감 덕분에 자연스럽게 시각적 이미지들이 연상되었다. 이 작품은 음악적 소재들을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며 현대 음악의 복잡한 ‘이음’을 섬세하게 보여주었다.


오예민의 〈Ironic Sounds〉는 현대 음악의 모호성과 정형성에 대한 근본적인 탐구를 시도했다. 스네어 드럼, 라이브 비디오, 전자음악 편성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물리적 악기와 전자 악기 사이의 상호작용이었다. 이 작품은 센서 기술을 통해 실재하는 악기와 비존재하는 악기 간의 대화를 창출하여 음악의 경계를 흐리게 함으로써  현대음악의 기존 틀을 비판하면서도 그 안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자하는 시도가 보였다. 현대 음악의 정형성과 모호성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제공하는 작품으로, 음악의 본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하는 묵직한 메시지가 전달되었다. 


남진의 〈슬레이트 지붕 위의 오동나무꽃〉은 플루트와 25현 가야금을 사용해 세 악장에서 음악적 경치를 펼쳤다. 첫 악장은 서정적인 플루트의 선율과 가야금의 복잡한 리듬 구조가 어우러져 시적 풍경을 그렸다. 두 번째 악장은 한국 전통음악의 특징을 현대적으로 표현하며, 가야금이 곤충들의 움직임을 상징적으로 묘사했다. 마지막 악장은 순환과 자생의 이미지를 강조하며 공간감을 구성하는 음향 효과가 두드러졌다. 자연 현상과 함께 일어나는 미묘한 변화를 음악적 언어로 번역한 작곡가의 섬세한 감성이 와 닿았다.


1973년 작곡된 김정길의 〈Fünf Stücke〉는 목관 5중주를 위한 작품으로, 복합적인 음색과 기법을 활용해 깊이 있는 음악적 내러티브를 보였다. 특히 제 1곡의 느슨한 12음 기법은 베베른을 떠오르게 했으며, 제 4곡에서는 긴 지속음과 짧은 장식음의 대비가 인상적이었다, 목관악기의 다양한 가능성을 탐구하며, 당대의 현대 음악에 대한 창의적인 해석을 제공하는 작품이었다.


여섯 작곡가의 다양한 음악 언어를 통해 하나의 작품으로, 하나의 연주회로 연결되는 과정을 감상하면서 ‘유무상생’의 철학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 각 작품들은 서로 다른 음악적 소재와 특징이 상반되면서도 결국 하나의 조화로운 전체를 이루어냈다. 이를 통해 오늘날 개별과 공동체, ‘있음’과 ‘없음’ 사이의 복잡한 상호 작용과 보완적인 관계가 예술적으로 표현되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통해 드러난 ‘따로’의 중요성과 그 이후에 더욱 강조되는 ‘같이’의 소중함은 이 무대에서 다시금 강조되었다. 이번 연주회는 음악을 통해 우리의 삶과 사회에 대한 심층적인 이해를 선사한 인상적인 무대였다. 작품으로 이러한 철학적인 깊이를 표현하고, 청중에게 현대 사회의 가치를 고뇌하게 만드는 메시지를 전달한 여섯 작곡가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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