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제전 IV 리뷰_ 음악춘추2023_11월호 | 2023-11-29 | 218 |
감정의 공명 김예림 음악학 박사과정 어느 날 길가에 떨어진 낙엽을 보는데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굴러다니는 낙엽을 보면서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바스락 소리에 나는 즐거워하다가도, 날씨가 추워져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잎사귀들을 떨어낸 나무에 감정이입 해 너무나도 슬펐던 것이다. 이제는 하나의 현상을 볼 때 점차 다양한 면에 집착하게 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있다. 2023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 제전 IV에서 연주된 7개의 작품을 들으면서 한 현상에 대한 복잡미묘한 마음은 더욱 짙어졌다. 해맑게 들리는 소리 같으면서도 왜인지 그 안에 슬픔이 느껴졌고, 무겁게 짓눌린 분위기 속에서 위로를 찾았으며, 힘겨움 가운데 희망을 본 것이다. 이렇게 모순적인 감정이 이번 연주를 들을 때마다 물밀 듯이 몰려오게 됨으로써 ‘공명’이라는 단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명’. 두 가지 이상의 것이 공존한다는 의미를 지닌 이 단어가 이번에 연주된 작품들의 매력을 한껏 돋보이게 만들지 않을까. 복합적이고 이중적이며, 하나의 요소 안에 여러 재료가 한데 얽혀 어찌 보면 모순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실은 이러한 의미들이 다층적으로 모여 하나의 풍성한 입체적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이번에 연주된 작품들이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었다. 먼저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도 안식과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동시에 던지면서 의미를 한층 다채롭게 만든 작품들이 있었다. 오이돈의 피아노 연탄을 위한 <흥타령>(2022) 안에는 <천안삼거리 흥타령>의 주제 선율이 반복되어 등장한다. 이때 특히 <천안삼거리 흥타령>의 선율이 장조와 단조가 번갈아 가며 등장하다가, 곧이어 수직적 장조와 수평적 단조가 동시에 울려 퍼지면서 흥겨움과 기다림의 양가적 마음을 들려주었다. 류경선의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밤>(2022)은 유려한 청각적 자극을 통해 위로를 선사했다. 단순하게 진행되는 피아노의 4분음표 진행과 첼로의 2분음표 하행, 그리고 어느 순간 등장하는 엇박자와 재등장하는 평범한 리듬을 통해서 불안과 안정을 동시에 잡는 복합적인 감정을 묘사했다. 하지만 피아니시시모로 끝맺는 이 작품에서 첼로의 마지막 글리산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완전한 위로와 희망이 주어진 것인지, 혹은 다시금 불안으로 돌아가는 것인지 질문을 던지며 각자의 감정적 미궁으로 돌려보낸다. 마찬가지로 이혜성의 두 대의 첼로를 위한 <위로5-그리움>(2022)은 엔젤릭 트레몰로를 통해 천상의 소리를 선사함으로써 마음의 평화와 안식을 만들어주었다. 저음부의 묵직한 첼로 음향으로 인해 슬픔이 울컥울컥 올라왔지만, 엔젤릭 트레몰로의 부드러운 소리는 그 슬픔을 어루만져주었다. 첼로의 묵직한 소리와 트레몰로 및 붓점 리듬의 동시적 발생은 사무치는 그리움에도 불구하고 안식을 취할 수 있는 행복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고태은의 첼로 독주 <미로>(2021)는 삶의 힘겨움을 첼로의 반음계적 상행선율을 통해 극단적으로 들려주었다. 하늘을 향해 올라가고 있지만 도약이 반복되어 연주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고통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다. 상행을 통한 희망과 도약의 불안정함이 반복해서 제시되면서 통제할 수 없는 불안감을 증폭시킨 것이다. 작품 끝에서 음정의 도약은 어느새 사라지고 뭉텅이로 그려지는 음향은 미로의 끝에 다다른 희망찬 모습인 것인지, 혹은 다시 뒤로 돌아가 다른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끝없는 갈림길을 그려주었다. 불안과 희망의 양가적 감정뿐만 아니라 중심과 주변부에서 바라보는 감정의 극단성도 있었다. 강나루의 플루트, 클라리넷,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를 위한 <단오풍정>(2023)은 신윤복의 [단오풍정]의 모습을 하나하나 그려내었다. 그림에서 보이는 중요한 사건은 무엇일까? 해당 작품에서의 중심은 모호했다. 인물의 움직임이 국악 선율을 토대로 그려지다가도 어느 순간 다른 장면에 초점이 맞춰졌다. 그림 속 흥겨움, 멍함, 안락함 등은 소리를 통해서 얽혀있었다. 김정훈의 세 대의 클라리넷을 위한 <공중정원>(2021)은 다양한 주법을 통해 인간이 표현할 수 있는 중심과 주변부를 그려내었다. 에어와 텅잉 주법을 통해 중심에서 벗어난 음향을 구체적으로 설계한 것이다. 중심은 있지만, 현대적 음향을 통해 한번에 파악되지 않아 흐릿하게 보이는 중심과 주변부의 와해를 보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찌보면 명확하지 않은 마음과 한층 성장하여 다시금 돌아볼 때 보이는 중심적 마음, 그리고 그 주변을 둘러싼 애매한 마음들이 보이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원로작곡가 최인찬의 플루트와 피아노를 위한 <단소>(1980)는 한국음악적 요소와 현대음악 음향이 동시다발적으로 형성된다. 단소 농현의 특징이 플롯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남으로써 마치 정악을 듣는 듯한 편안함을 형성하였다가도, 트라이톤의 등장으로 긴장감과 불안감을 조성하였다. 플루트와 피아노 사이의 미묘하게 부딪히는 음정들은 안정적 화성과 평온함이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음악은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감정을 제시한다. 음악만큼은 정확한 답을 던져주기보다는 듣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방향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번 대한민국 실내악 작곡 제전 IV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연주를 통해 양면적인 인간의 감정과 삶을 청각적으로 재현하였지만, 이번 작품들에는 정답은 없었다. 슬픔을 느끼면서 그 안에서 희망과 행복을 찾았고, 불안하지만 한편으로는 이를 통한 도약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이번 연주는 다차원적인 감각을 선물해주었으며, 공명하는 감정을 실시간으로 전달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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